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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족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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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08-0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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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7일 -엡 1:1~15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자

에베소서 도움말

1. 들어가는 말
에베소서는 로마서와 더불어 바울 서신의 양대 기둥이라 불릴만한 서신이다. 교회에서 로마서가 빈번히 다루어지는 것처럼, 에베소서도 신자들에게 빈번히 언급된다. 로마서가 매우 조직적으로 쓰여졌다면, 에베소서도 또 다른 의미에서 매우 체계적으로 쓰여졌다. 로마서가 바울 사상의 중요한 것들을 다룬다면, 에베소서도 거기에 빠지지 않는다. 로마서 못지않게, 에베소서도 교회 안에서 인기가 좋다.
에베소서가 로마서와 함께 이렇게 인기를 얻는 요인 중 하나는 아마도 이 서신이 갖는 보편성이라 생각된다. 로마서가 로마 교회의 상황과 문제에 맞추어 쓰여졌으면서도 바울의 중요한 생각과 사상을 긴밀하게 다루고 있는 것처럼, 에베소서도 한 교회의 어떤 상황과 문제에 국한하기 보다는 바울의 생각과 사상을 보편적으로 다룬다. 특별히 이점은 에베소서가 갖는 회람적 성격과 직결되어 있다. 에베소서는 한 교회만을 위해 보낸 편지이기 보다, 소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가 읽도록 써 보낸 편지라고 볼 수 있다. 정리된 바울의 사상을,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그 주변의 소아시아 교회들이 읽도록 의도된 것이다.

2. 서신의 특징
이런 에베소서의 성격은 에베소서가 갖는 여러 특징과 자연스레 연관되어 있는 듯 보인다. 그 연관된 특징을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요약 정리적 특징이다. 에베소서는 바울의 생각과 사상을 함축적으로 요약하고 정리한 듯 보인다. 예를 들어, 2:8-9은 ‘이신칭의’의 주제를 압축한 듯 하고, 또한 2:11-22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방인과 유대인과의 관계를 정리한 듯하다. 그래서 혹자는 에베소서가 편지 형태를 갖고 있지만, 소논문 같은 모습을 지닌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마도 바울 사상을 회람 식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런 특징이 필요했을 것이다.
둘째는 어휘와 표현이 독특하다는 점이다.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어휘는 독특하다. 신약성경 전체 중 에베소서에만 나오는 단어가 38개나 되며, 에베소서에만 있고 다른 바울 서신에서는 나오지 않는 단어가 44개나 된다. 문체도 특이하다. 길고 복잡한 문장이 많고, 추상명사와 관계사 등을 많이 쓴다. 아마도 이런 특징은 바울 사상을 한 번에 보편적으로 요약 정리하고 전파해야 하는 서신의 성격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셋째는 수신자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표현이 적다는 점이다. 다른 바울 서신에는 개인에 대한 언급, 문안, 회고담 등이 종종 등장하지만, 에베소서에는 이런 면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수신자들을 직접 아는 듯한 표현도 절제되어 있다 (참조. 1:15; 3:2 등). 이러한 특징은 내용상 에베소서와 유사한 골로새서와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골로새서의 맺음말에는 문안하는 사람들 무리가 길게 등장하지만 (참조. 골 4:10-17), 에베소서에는 이런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특징도 에베소서가 갖는 회람 서신 성격과 깊이 연관되어 있어 보인다.
넷째는 실현된 종말론(realised eschatology)의 측면을 강하게 부각한다는 점이다.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이미’ 이루어진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1-10은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은 모습을 강하게 부각하고, 2:11-22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로 지어지는 성전의 모습을 인상 깊게 묘사한다. 아마 이러한 점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확고히 하려고 함으로써, 소아시아 교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려는 의도에 기인한 듯 보인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참조. 3:1; 6:20), 한편으로는 자신의 과거 사역과 그 결실로 이루어진 교회의 모습을 회고적으로 바라보며, 또 한편으로는 소아시아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고자 한 듯 보인다.

3. 문맥 구조
에베소서의 이런 성격과 특징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글의 흐름과 잘 어울린다. 에베소서는 함축적이고 절제된 언어로, 다양한 주제와 영역을, 체계적으로 잘 구성하여 배열하고 있다. 이런 글의 구성을 간략하게 다음의 문맥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I. 머리말 (1:1-2)

II. 본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인류 (1:3-6:20)
[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인류(교회)를 만드심 (1:3-3:21)
1. 요약적 제시: 하나님의 뜻 실현과 바울의 기도 (1:3-23)
2. 구체적 설명 (2:1-3:21)
(1)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구체적 모습 (2:1-22)
(2)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사도 바울의 기도 (3:1-21)

[2] 새 인류 되는 마땅한 모습 (4:1-6:20)
1. 새 인류 됨을 위한 이론적 원칙 (4:1-24)
(1) 공동체적 측면 (4:1-16)
(2) 개별적 측면 (4:17-24)
2. 새 인류 됨을 향한 구체적 권면 (4:25-6:9)
(1) 개별적 측면 (4:25-5:21)
(2) 공동체적 측면 (5:22-6:9)
3. 새 인류 되는 싸움의 실체와 방법 (6:10-20)

III. 맺음말 (6:21-23)

4.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인류
에베소서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천상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이 땅에 세워진 교회를 말하고 (1:3-3:21), 그 교회가 가지는 마땅한 모습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4:1-6:20).

4.1. 하나님의 뜻 실현과 바울의 기도 (1:3-23)
1:3-14은 창세전에 있던 하나님의 뜻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 무리에게 실현되었음을 말한다. 이 점은 세 단락으로 (1:3-6; 7-12; 13-14) 나누어 설명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는 것이며, 그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백성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1:3-6). 그런 계획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사역을 통해 이루어졌고 (1:7-12), 결국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인해 실현되었다 (1:13-14). 이 세 단락은 차례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각 단락의 끝머리에는 (1:6, 12, 14b) 그 뜻의 성취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려는 것임을 확인시킨다.
1:15-23은 이 뜻의 성취에 따라 바울이 기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령으로 이루신 거룩한 백성 만들기를 계속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계속 주시기를 기도하며(1:17), 사람들에게 마음의 눈이 밝아지길 기도한다 (1:18a). 왜냐하면 그래야 사람들이 하나님 역사하심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눈이 밝아져야만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기업의 영광과 풍성이 어떠한 것인지, 또한 베푸시는 능력이 얼마나 크신지를 알 수 있다 (1:18b-23).

4.2.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구체적 모습 (2:1-22)
2-3장은 1장의 내용을 확대하여 설명한다. 먼저 2장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을 (즉, 1:3-14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3장은 1장의 바울 기도를(즉, 1:15-23의 내용을) 더 구체화한다. 그런데 2장은 개별적 측면과 (2:1-10), 공동체적 측면으로 (2:11-22) 나누어 설명된다.
그리스도로 구속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개별적 측면에서는 죽었던 내가 살아나는 것이다 (2:1-10). 이전에 우리는 악한 영과 세상의 풍속을 따라 살았었는데, 그것은 사실 죽은 모습이었다 (2:1-3). 하지만 하나님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어 그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2:4-7). 새 생명을 주셨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구원하신 이유는 1) 우리 스스로 이루었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실 뿐 아니라 (2:8-9), 2) 결국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한 일을 행하게 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2:10).
또한 이러한 구속은 공동체적 측면의 의미도 갖고 있다. 내가 구원 받은 것은 혼자 살아나는 것만이 아니라 거룩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2:11-22). 특별히 본문은 바울 당시 가장 큰 문제로 존재했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갈등 문제가 해결된 것을 말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하나 되기 힘들었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2:11-18). 그리스도로 만들어지는 이러한 새 공동체는 성전에 비유된다. 각 사람은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세우심을 받아 서로 연결된 거룩한 건물, 즉 성전이 되어간다 (2:19-22). 구약에 계시된 성전은 결국 예수로 말미암는 거룩한 새 사람들, 새 공동체를 말한다.

4.3.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사도 바울의 기도 (3:1-21)
3장은 2장의 내용을 반영하여 바울이 기도하는 내용을 보여준다. 따라서 3장은 1:15-23에 잇대어 있으면서도, 2장에서 밝혀진 구속의 모습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 기도 전에 먼저 밝히는 것이 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역할을 맡았으며, 왜 그런 역할이 주어졌는지에 대한 것이다 (3:1-13).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해 은혜의 경륜을 맡았으며 (3:3. 참조 3:2-7),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기 위해 세워졌다(3:9. 참조 3:8-12).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낙심할 필요가 없다 (3:13a). 오히려 그들에게 영광이 된다 (3:13b). 결국 이러한 점들은 이어지는 바울의 기도에 힘을 더 실어준다.
3:14-21의 기도는 1:15-23의 기도를 이어 받으며 동시에 2장에서 구체화된 구속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바울은 ‘영광과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3:16). 이는 1:15-23에서 성령주시기를 구하며 (1:17) ‘그 기업의 영광과 풍성’을 알도록 기도한 내용을 (1:18) 이어 받을 뿐 아니라, 2:1-10에서 묘사한 새 사람을 염두에 둔 것이다 (특히. 2:4-7). 또한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로 인해 ‘모든 성도와 함께’ 잘 자라가 충만함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3:18-19). 이는 2:11-22에 묘사된 연합된 공동체(성전의 그림)를 생각하는 것일 뿐 아니라, 1:22-23에 표현된 (교회를) 충만케 하시는 예수에 대한 언급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기리는 송영으로 그 기도를 마무리한다 (3:20-21).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분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이미 1장에서 말했는데 (1:6, 12, 14b), 지금 그 말대로 송영을 드리며 서신의 반 가량을 종결하고 있는 것이다.

4.4. 새 인류 됨을 위한 이론적 원칙 (4:1-24)
4장부터는 (1-3장에서 정리된 것을 기초로 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공동체(새 인류)가 나아갈 길과 모습에 대해 말한다. 먼저 4:1-24은 새 인류 됨에 합당한 원칙이 무엇인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로 부르심은 입은 자들은 모두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한다 (4:1). 그런데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인류는 연합된 공동체이기 때문에, 연합의 원리가 중요하다. 4:1-16은 이점을 먼저 다룬다. 모두 함께 연합하여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 (4:1-3). 이 연합에 대한 권면은 성령, 성자, 성부 하나님이 연합하여 하나로 계신다는 원리에 기초해 있다 (4:4-6). 그런데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르치는 지도자들을 복수로 교회에 주신다 (4:7-16).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는 모두 교회에서 가르치고 다스리어 목양하는 사람들로서 함께 일한다 (4:11). 그들의 노력과 봉사로 교회 공동체는 1-3장에서 설명한 거룩한 공동체 모습을 이루어간다 (4:12-16).
4:17-24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모습을 개별적 측면에서 권면한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옛 모습에서 (참조. 2:1-3) 그리스도로 살리셨으니 (참조. 2:4-7), 이제부터 이방인의 허망한 모습을 따라 살지 말고 (4:17-19),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사람의 모습으로 살라고 권한다 (4:20-24).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새창조 되는 새 인류의 길이다 (4:23-24; 참조. 1:3-4).

4.5. 새 인류 됨을 향한 구체적 권면 (4:25-6:9)
4:25-6:9은 새 인류 되는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개별적 측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4:25-5:21), 공동체 측면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한다 (5:22-6:9).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는 개인의 모습이 4:25-5:2과 5:3-21에서 두 번 반복되어 설명된다. 첫 번째 설명은 일상의 삶 속에서 평범하게 부딪히는 문제들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다면 (4:25-5:2), 두 번째 설명은 보다 심각한 문제들과 당시 이방 종교의 영향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다 (5:3-21). 그런데 이 두 설명 모두 잘못된 모습을 지적하면서 (4:25-32; 5:3-14), 바른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5:1-2; 5:15-21). 예를 들어, 거짓을 버리고 (4:25) 도적질하지 말아야 (4:28) 할 뿐 아니라, 음행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 (5:3-5). 그대신 하나님을 본받아 사랑하며 (5:1-2), 주의 뜻을 잘 이해하고 성령에 충만해야한다 (5:17-18).
이어진 5:22-6:9에서는 공동체 속에서 새 인류로 살아가는 구체적 모습이 어떤 것인지 세 가지 분야에서 설명한다 (5:22-33; 6:1-4; 6:5-9). 첫째는 부부 사이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원칙이다 (5:22-33).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며 (5:22-24),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한다 (5:25-33). 둘째는 부모와 자녀들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원칙이다 (6:1-4). 자녀들은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해야 하고 (6:1-3),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말고 주의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 (6:4). 셋째는 상전과 종이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6:5-9). 종들은 상전에게 주께 하듯 순종해야 하고 (6:5-8), 상전들은 공갈을 그치고 종들이 자기들을 대우하는 것처럼 그들을 대우해야한다 (6:9).

4.6. 새 인류 되는 싸움의 실체와 방법 (6:10-20)
마지막으로 6:10-20은 이렇게 새 인류 되는 길이 영적 싸움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그 싸움에 승리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그리스도로 인한 구속은 거룩한 새 백성 됨이기에 매우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윤리적 요청은 단순한 윤리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실체와 싸우는 싸움이다. 악한 영은 바울 당시에 여러 모양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잘못된 삶을 살도록 이끌었다. 그래서 서신의 마지막 자리에서 그런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면이 밝혀진다. 자연히 승리의 방법도 분명히 제시된다. 영적인 싸움이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이기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영적인 방법을 따르라는 것이다.

5. 나오는 말: 우리를 향한 교훈
이 회람용 서신은 그 옛날 소아시아에 널리 전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에게도 널리 들려져야 한다. 그 옛날 소아시아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시대에 큰 도전으로 남아야 한다. 그 도전을 크게 네 가지 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거룩한 새 인류로 만들고자 하신다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 아들들 됨이, 새 인류 됨이 그분의 계획이다. 에베소서는 이 요청을 웅장한 교향곡처럼 들려준다. 우리는 이 요청을 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바울의 기도는 우리의 관심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그분이 성취한대로 나아가야 한다. 내 생각을 섞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 맑고 힘 있게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관심은 이 해맑음을 따라야 하고, 우리의 기도는 이 힘을 배워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철저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에베소서는 시종일관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따르지 말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거룩한 삶을 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 옛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되라고 권면한다. 그렇게 새 사람 되는 것이 구원이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이다.
넷째, 이런 삶이 함께 모여 공동체로 실현되어야 함을 말한다는 것이다. 참 공동체 실현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복수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거룩함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각자의 역할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거룩한 공동체가 이루어질 때, 참된 성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널리 퍼진다. 우리는 참 공동체 모습으로 이 영광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서신을 묵상하며 우리 시대를 향한 외침을 들어야 한다. 새 인류가 되는 길은 분명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악한 영과 세상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에베소서는 이런 현실 속에서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으며, 그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진섭 교수 (에스라 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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